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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양의무

도덕의 영역을 대신한 법의 모습

 

자식이 태어나면 부모가 돌보고,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이 봉양하며, 아내 또는 남편이 아프면 그 배우자가 보살펴야 한다는 도덕사회의 불문율이 있었다. 그러나 근래의 뉴스를 보면 더 이상 이런 불문율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 같다.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배우자로서의 도리를 하지 않는 패륜(悖倫)의 자리에 법이 최소한도로 개입한 결과물이 바로 ‘부양의무’이다. 이번 호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도덕이 무너진 자리를 법이 어떤 모습으로 채워나갔는지를 살펴보자.


글 이은수(법무법인 ‘지우’ 변호사)

 

 

 

 

사례1

A녀는 B남을 만나 사귀는 도중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B남은 임신사실을 알고도 A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A녀는 아이를 낳았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온갖 궂은일을 하며 혼자서 아이를 키웠다. 10여 년 뒤 A녀는 암수술을 받았고, 이후 생계를 꾸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반면, B남은 좋은 회사에 다니며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 B남의 아이를 키워온 A녀는 B남에게 과거에 지출한 양육비와 향후 발생할 양육비를 청구하려고 한다.

 

부모는 자립하기 전의 자녀를 양육할 의무가 있고, 자녀는 혼자 힘으로 생활하기 힘들어지신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부모 자식 간의 부양의무는 민법에도 잘 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민법은 ① 직계혈족 사이에는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고 ② 부양의 의무는 부양을 받을 자가 혼자 힘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이행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B남은 A녀의 남편은 아니지만 아이의 아버지임은 명백하다. 따라서 B남은 아이에 대한 부양의무가 있고, A녀는 B남에게 앞으로 발생할 양육비는 물론, 과거에 지출한 양육비도 B에게 청구할 수 있다. 양육비는 자녀의 연령, 지역별 편차, 소득수준 등을 고려하여 법원이 결정하는데, 과거 부양료의 경우 일시청구는 가혹하다는 이유로 상당부분 감액될 가능성이 높다.

 

 

 

사례 2

C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 C녀에게는 슬하에 자녀가 셋 있는데, 그 중 둘은 본인이 낳았고, 장남 D는 남편이 전처와 낳은 아들이다. D에게 C녀는 계모인 셈이다. 형편이 어려운 C녀는 자녀들에게 도움을 구하려고 하는데, 본인이 낳은 자녀들은 모두 형편이 어려워 도와달라고 하기 어렵고, 장남 D만이 부자다. C녀는 D에게서 부양료를 받고 싶다.

 

민법은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 사이에도 부양의무를 인정한다. 이에 따라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직계혈족인 아들의 배우자이기 때문), 자식은 계모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계모는 직계혈족인 아버지의 배우자이기 때문).


그런데 직계혈족의 ‘배우자’에게 직계혈족과 같은 부양의무가 인정되는 것은 그 배우자가 직계혈족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계혈족이 사망한 경우‘에는 한 집에 살면서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이상 부양의무가 인정되지 않는다. 결국 사례2에서 남편이 사망한 이상 C녀는 전처의 아들 D에게 부양료를 청구할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 남편이 사망한 미망인 며느리는 생계를 같이 하지 않는 한 시어머니를 부양할 의무가 없다.

 

 

 

사례 3

40대 이모씨는 불의의 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모씨의 아내 E는 적극적으로 남편을 간병하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간병에 소홀해졌다. 결국 며느리 E를 대신해 이모씨의 홀어머니 F가 나섰는데, 간병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경제적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F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지출한 부양료를 며느리 E에게 청구하려고 한다.

 

부부는 서로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 부모는 (비록 자녀가 성년이라 할지라도) 혼자 힘으로 생활이 불가능하다면 자녀를 부양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아픈 이모씨를 부양할 사람은 아내인 E와 홀어머니 F 두 사람인 셈인데, 누가 이모씨를 부양할 우선적 의무를 지고 있을까?


법원은 아내 E가 1차적 부양의무, 홀어머니 F는 2차적(보충적) 부양의무를 가진다고 보았다. 부부의 부양의무는 혼인관계의 본질적 의무인 반면에, 부모가 성년의 자녀를 부양할 의무는 부모가 생활에 여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인정되는 보충적인 의무라는 이유에서다. 따라서 홀어머니 F는 본인이 지출한 부양료 중 일부를 며느리 E에게서 돌려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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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낙상이 흔한 계절
튼튼한 관절로 골절을 막아라!

 

 

날씨가 추워지면 곳곳에 내린 눈이 얼어붙어 빙판길이 생기기 십상이다. 조심조심 걷지만 아차 하는 순간 엉덩방아를 찧거나 넘어지게 된다. 주위시선에 민망함도 잠시, 움직일 수 없는 통증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특별히 골다공증이 심하거나 퇴행성관절염을 갖고 있는 노인들의 경우에 낙상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일 수 있다. 겨울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관절건강에 대해 알아보자.

글 편집부

 

 

 

 

매해 겨울마다 꾸준히 증가하는 노인 낙상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지난해 ‘낙상’등의 넘어짐으로 진료를 받은 노인이 198만 명이었다. 진료비는 약 5조원 가량으로 연평균 10.3%씩 꾸준히 증가했다.

 

대한노인재활의학회가 60세 이상 노인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7%가 낙상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38.9%는 무릎, 16.7%는 허리, 11.1%는 골반 순으로 40%가량이 낙상으로 인한 골절을 경험했다.

 

이처럼 노인에게서 낙상과 골절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시력이 저하돼 주변 위험요소를 감지하기 어렵고 위기상황에도 반사신경이나 균형감각이 현저히 떨어져 중심을 잃기 쉽기 때문이다.

 

노인의 경우 특히 골다공증이 심한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가벼운 낙상에도 골절이 쉽게 발생한다.

 

 

 

 

생각보다 무서운 고관절 골절


고관절은 대퇴골머리와 골반골 비구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엉덩이와 허벅다리를 이어주는 부분의 관절이다. 어깨관절 다음으로 넓은 운동범위를 가지고 있고, 두텁고 강한 근육층에 의해 둘러싸여 인체에서 가장 안정된 관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뒤로 넘어져 심하게 엉덩방아를 찧을 경우 뼈가 약한 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고관절 골절이다.

 

고관절 골절이 발생하면 일단 연령에 관계없이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부위의 골절처럼 석고고정 등의 처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술 후에도 회복을 위해 장기간 누워 있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식욕부진, 욕창, 폐렴과 같은 합병증도 나타나기 쉽다.


고관절 골절 환자의 경우 수술 후 2년 이내 약 1/3환자가 사망하며 네 명중 한 명은 야외에서의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 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고관절을 지배하는 무릎관절 대퇴신경, 좌골신경, 폐쇄신경은 무릎관절도 지배하기 때문에 고관절 질환은 무릎에 발생하는 관련통의 중요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퇴행성 무릎관절염이 있다면 더욱 주의


고무릎에서 완충역할을 하는 연골이 오랫동안 사용하여 마모되면 뼈와 뼈 사이의 마찰로 인해 통증이 생기게 된다.

 

이를 퇴행성 무릎관절염이라고 하는데,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언덕을 오르내릴 때 지속적으로 무릎이 시큰거리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걸음을 걷는데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지기 때문에 자칫 중심을 잃고 넘어져 골절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퇴행성 무릎관절염은 자연스런 노화현상의 하나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초기증상에 빠른 대응과 꾸준한 관리, 적절한 치료가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

 

 

❖ 평소에 골다공증을 예방하고 치료한다

노인은 물론 여성호르몬이 급감하는 페경기 이후의 여성에게 골다공증은 현저히 증가한다. 별다른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침묵의 병’으로 불리기도 한다.

 

골다공증이 진행되면 골밀도가 낮아져 가벼운 넘어짐에도 골절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따라서 평소에 미리미리 골다공증 예방에 신경 써야 한다.

 

지나친 알코올 섭취를 피하고 무엇보다 칼슘, 비타민D가 풍부한 음식을 먹도록 한다. 칼슘이 많은 음식에는 우유, 치즈, 멸치 등과 어린 솔잎이나 무청, 청경채 등의 녹황색 채소와 해조류가 있고 표고버섯, 간, 버터, 인삼 등에는 비타민D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 꾸준한 운동으로 몸의 유연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골절의 가장 큰 원인이 되는 낙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칭 등 꾸준한 운동으로 몸의 유연성을 강화시키고 근력을 키우도록 한다.

 

특히 체중이 증가하면 무릎관절에 무리를 주므로 비만에 주의해야 한다. 운동은 점차 단계별로 강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는 가벼운 걷기나 수영 등이 적당하다.


❖ 1년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안과검진을 받도록 한다

평소 시력약화, 어지러움 증세가 있다면 1년에 최소 한 번 이상은 안과검진을 받도록 한다. 노인층에 흔히 나타나는 녹내장이나 백내장은 시력을 제한하여 낙상의 위험이 더 커질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평소 복용하는 약이 있다면 의사를 통해 약을 검토해보고 졸립거나 어지러움 증세가 있을 수 있는 약들은 피하도록 한다. 또한 다초점 렌즈 안경을 착용하는 경우, 계단을 오르내릴 때 시각이 왜곡되므로 주의하도록 한다.

❖ 주의하여 걷는다

실내 어두운 조명은 피하고 미끄러짐 깔개를 설치하는 등 보조도구를 사용하여 걷는 것도 낙상을 줄일 수 있
는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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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의 아이콘에서 독기 품은 여배우로

배우 수 지

 

영화 「건축학개론」(2012)으로 뭇 남성의 첫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수지. 그녀가 4년 만에 은막에 돌아왔다.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당찬 여류 소리꾼으로 돌아온 그녀, 이제 첫사랑을 보내고 불 같은 열정으로 가득 찬 그녀를 맞이하자.


글 김지혜(자유기고가)

 

 

불같은 열정의 수지

미쳐 몰랐다. 얼굴처럼 여리고 청초한 외면의 소유자일 것 같았던 수지의 마음이 불같은 열정으로 꽉 차 있다는 것을. 수지는 영화 「도리화가」(감독 이종필)로 다시 은막 위에 섰다.

 

영화의 배경이 된 1867년은 여자가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엄마를 잃은 아픔과 한(恨)을 소리로 달랬던 진채선은 스승 신재효(류승룡 분)를 만나 못다 이룬 꿈을 펼쳐나간다. 수지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건 내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진)채선에 대한 감정 이입은 어렵지 않았어요.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울컥했죠. 가수의 꿈을 꾸면서 연습생으로 지냈던 시절의 서러운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어요. 시대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채선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판소리는 어떻게


실존 인물이었다. 게다가 무려 150년 전 역사 속 인물이었다. 살아본 적 없는 시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인물에서 동질감을 느낀 이휴는 뭘까. 수지는 “독한 면이나 악바리 근성 같은 게 닮았어요. 저의 그런 기억들을 최대한 끄집어 내서 연기하려고 했어요. 그런 시대에 자신의 꿈을 외칠 수 있다는 건 또 얼마나 대단한 거에요. 진채선은 닮고 싶은 인물이에요”라고 말했다.


수지는 판소리를 직접 하기로 결심하고 박애리 명창으로부터 개인지도를 받았다. 연기 활동 뿐만 아니라 가수 활동도 병행하는 촉박한 일정 속에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교습에 쏟으며 진채선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작품 고를 때부터 판소리에 대한 부담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판소리는 누가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는 내가 진짜 이걸 할 수 있을까 싶기는 했죠. 그러나 이 영화가 채선의 성장기이고, 판소리도 초반에 미숙하다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소리를 잘하는 것보다는 진정성 있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도리화가의 채선

진채선은 극 중에서 소리를 위한 집념을 버리지 않는다. 신재효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남장도 불사하며, 낙성연에 참가하기 위해 목숨을 건 도전을 마다치 않았다. 그야말로 악바리였다. 수지 역시 진채선의 근성과 독기를 가지고 있었다. 영화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극 중 한 감정신을 배려 차원에서 빼려고 했다.

 

하지만 수지는 그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할 수 있다고 감독을 설득했다. 결과적으로 수지는 그 장면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판소리에 대한 진채선의 진심이 묻어나 보는 이를 뭉클하게 했다.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간 감정신이었고, 주변의 우려를 딛고 잘해낸 것이다.


“전 칭찬하면 더 잘하는 스타일이고, 안 좋은 말을 들어도 잘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에요. 칭찬이나 욕이 모두 다 동기부여가 된다고 볼 수 있지만 조금 다른 차원이랄까요. 칭찬을 받으면 자신감이 생겨서 좀더 편하게 기량을 펼치지만,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어떻게든 해낼 거야’, ‘내가 어떻게 하나 봐’하는 독기를 품어 잘 해내는 스타일이에요. 하하.”

 

 

 

 

미래가 밝은 그녀


그렇게 수지는 현장에서 부딪히고, 깨우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한 뼘 더 성장했다. ‘건축학 개론’으로 부터 4년, 배우 배수지로서 보내온 시간에 대한 소회를 묻자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욱 어려울 것 같고요”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배우를 꼽아달라고 했다. 수지는 “제니퍼 로렌스!”라고 주저 없이 답했다. 그리고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보셨어요? 그 영화 속 제니퍼 로렌스 같은 연기를 저도 언젠가 할 수 있겠죠?”라고 반문했다. 왜 안 되겠는가. 수지는 이제 21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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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은 사계절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녔지만 특히 겨울 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눈이 많은 지역으로 새하얀 설경을 비롯해 고인돌, 모양성, 질마재, 무장남문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어 볼거리가 많다.


글 김초록(여행작가)

 

travel tip 지역번호 063

가는길 서울, 전주, 김제, 부안, 광주 등지에서 고창행 버스 수시 운행. 서울역에서 호남선 열차를 타고 정읍역에서 내려 선운사행 버스로 갈아탄다.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정읍 나들목에서 22번 국도를 타고 15.7㎞ 들어가면 흥덕에 이른다. 여기서 계속 22번 국도를 타면 선운사로 바로 갈 수 있고, 23번 국도로 가면 고창읍내로 가게 된다. 서해안고속도로 선운사 나들목으로 빠지면 한결 가깝다.

 

여행 문의: 고창군청 문화관광과 (560-2455), 선운산 관리사무소(560-8681).

숙박 선운사 주변이나 고창읍내에 숙박시설이 많다. 주말에는 미리 예약하고 가는 것이 좋다. 선운산관광호텔(561-3377), 선운산유스호스텔(561-3333), 건강휴양 펜션 힐링카운티(561-1116) 등. 석정휴스파(고창읍 석정리 560-7500)는 100% 유기 게르마늄 온천수로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온천이다.

 

 

 

 

 

흰눈 덮인 선운산 봉우리.

 

눈 덮인 선운사의 그림 같은 풍경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선운산과 그 아래 포근히 안긴 선운사. 고창을 대표하는 명소로 흰눈이 사분사분 내려앉아 있다. 어딜 둘러봐도 동화 속 정경이 그려지니 겨울 여행지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변산과 곰소만을 사이에 두고 치솟은 선운산은 천왕봉, 여래봉, 인경봉, 구황봉, 노적봉 같은 크고 작은 봉우리가 띠를 두른 듯 이어져 있고, 명소들이 산자락 깊숙이 박혀 있어 언제 찾아도 그윽한 맛을 풍긴다.


선운산은 도솔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도솔이란 말은 불가의 도솔천에서 나왔다. ‘미륵보살이 머문다’는 뜻이다. 선운(禪雲)이란 이름도 고찰 선운사에서 따온 것이다.

 

선운사는 한때 절에 딸린 암자가 89개에 이르고 수도 터로 쓰던 석굴이 24개나 있었던 대가람이었으나 정유재란 때 모두 불타버리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런 곡절에도 불구하고 수행자들이 계속 찾아 들어 선풍을 크게 떨칠 수 있었다.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제290호)을 비롯해 만세루, 팔상전, 영산전, 명부전, 산신각, 관음전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선운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동백나무숲(천연기념물 184호)은 선운사 바로 뒤쪽 5천여 평의 산비탈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2월 하순쯤이면 새빨간 동백꽃이 피어날 것이다.


선운사에서 나와 흰 눈 내려 쌓인 오솔길을 따라 선운산으로 향한다. 산새소리와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널찍하게 열린 산길을 오르노라면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수도했다는 진흥굴을 비롯해 산 중턱에 우뚝 선 봉두암(투구봉), 그 너머로 보이는 사자암,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암자(도솔암)가 들어서 있다.

 

암자를 떠받친 암벽에는 마애불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 불교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애불을 뒤로하고 조금 더 오르면 용문굴을 지나 선운산의 하이라이트인 낙조대가 반긴다.

 

낙조대에서 정상까지는 20여 분 더 가야 간다. 선운산 산행은 1시간 30분~8시간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

 

 

무장면 성내리에 있는 무장남문.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옛 무덤


고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의 고장이기도 하다. 고인돌은 수 천 년 전의 공동묘지다. 2천 여 개에 달하는 고인돌은 고창을 세계 속의 도시로 각인시켰다.

 

먼저 고인돌박물관(www.gcdolmen.go.kr)에 들러 고인돌에 대한 기초지식을 쌓는 게 순서다. 선사시대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고 특히 고인돌을 운반하는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1:1 모형은 인기다.

 

박물관에서 가까운 아산면 상갑리와 고창읍 매산리에는 고창군 일대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 가운데 500여 기의 고인돌이 밀집해 있다.

 

고창 고인돌은 크기와 형태에 따라 북방식(탁자식), 남방식(바둑판식), 주형지석, 위석식, 지상석곽식 등으로 나뉜다. 특히 지상석곽식은 고창에서만 볼 수 있는 고인돌로 여러 장의 판석으로 무덤방을 만들었다.

 

많고 많은 고인돌 가운데 고창읍 도산리의 한 마을 뒤편에 서 있는 북방식 고인돌 한 기와 동양에서 가장 크다는 운곡 지석묘 한 기가 눈길을 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도산리 고인돌은 넓은 판석 2개를 세로로 세우고 그 위에 상석을 얹은 형태이다. 수 천 년 역사를 침묵으로 보여주고 있다.

 

고인돌박물관에서 4㎞ 거리에 있는 운곡 지석묘는 높이 5m, 둘레 16m, 무게는 무려 300여 톤에 달한다. 어떻게 만들어 옮겨왔는지 현대과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이렇듯 고창 땅에 선사문화가 자리잡게 된 것은 이곳이 그만큼 고대인들에게 살기 좋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산과 강, 기름진 평야, 그리고 바다와 인접해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까닭이다.

 

수렵 생활을 하면서 새 땅을 찾아 정착을 꿈꾸던 그들에게 이 땅은 분명 낙토였을 것이다.

 

 

 

 

모양성에서 바라본 고창읍내 전경.

 

고창읍성의 가치


고창 읍내에 있는 모양성(고창읍성)도 찾아볼 만하다. 조선 초기에 축조된 모양성은 우리나라에서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읍성으로 꼽히며 성 밟기 풍속이 전해 내려온다.

 

성 밟기는 성을 돌며 무병장수를 비는 의식으로 음력 9월9일에 열리는 모양성제 기간에 볼 수 있다. 예부터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사적 제145호로 지정된 이 성에 사용된 석재는 거의 자연석이다. 동·서·북에 3개의 문을 두고 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성벽의 일부를 네모지거나 반달꼴로 밖으로 내 쌓은 것이 특징이다.


축성 당시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14동의 성곽 건물들(관아, 동헌, 내아 등)은 1976년부터 복원·정비한 것들이다.

 

높이가 6m에 달하는 성 둑에 올라서면 고창 읍내와 넓은 평야가 한 눈에 바라보인다. 성 답사는 성곽 밖, 성벽 위, 성안 솔숲 길 따라 선택하며 돌 수 있다. 인적 드문 산책길은 호젓하고 아름답다.

 

성곽에서 바라보는 고창 읍내의 전경도 시원스럽다. 모양성 건너편에는 이 고장이 낳은 판소리의 대가 동리 신재효 고택이 있다.

 

신재효는 이곳에서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가루지기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등 여섯 마당의 가사를 정리하고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고택 옆에 한국의 판소리를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판소리박물관이 있다.

 

 

 

구시포항.

 

쓸쓸해서 좋은 구시포 해변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펼쳐진 구시포 해변. 물이 밀려 내려간 모래밭은 마치 사막 같다. 방파제에 올라 바라보는 구시포 해변이 그림 같다. 방파제 건너로는 ‘까막섬’이라 불리는 ‘가막섬’이 홀로 떠 있다.

 

또 해질녘이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참으로 아름답다. 북쪽 방파제 뒤로 나 있는 너른 모래밭은 명사십리로 불린다. 명사십리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다. 참 넓다, 라는 말이 절로 새어 나온다.

 

서해안에도 이렇게 너른 해변이 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모래가 파도처럼 몰아친다. 구시포에 있는 해수찜(구시포해수월드)은 여행의 피로를 풀기에 제격이다.

 

해수온탕, 해수냉탕, 불한증막, 모래찜질방, 황토옥돌찜질방, 녹차탕, 암반수탕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해수찜은 바닷물의 뛰어난 삼투압효과로 온몸의 혈액순환을 도와주어 건강과 피부 미용에 그만이라고 한다.

 

구시포 일대는 전국에서 바닷물 염도가 가장 높아 해수찜의 최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이곳에서 해수찜을 하려면 순면으로 된 찜복을 꼭 입어야 한다. 찜복을 입지 않으면 물이 뜨거워 화상을 입기 때문이다.

 

해수찜은 보통 20~30분 정도가 가장 적당하다. 구시포에서 명사십리 옆길을 타고 해리면 쪽으로 간다. 궁산저수지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동호해변으로 우회전해 계속 가면 오른쪽에 해리염전이 보인다.

 

바둑판처럼 나누어진 염전의 허름한 소금창고들은 시간의 흐름마저 되돌린 듯 쓸쓸한 풍경이다. 해리면 염전지대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심원면 하전리 갯벌마을(서전마을)이 나온다. 물이 빠지면 1200ha의 갯벌이 펼쳐진다.

 

이곳 개펄은 여느 개펄과는 조금 다른데, 뻘이 단단해 발이 빠지지 않는다. 마을에는 230여 가구 600여 주민이 살고 있는데, 그네들은 드넓은 갯벌에서 연간 4000여의 톤 바지락을 거둔다. 수확량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고창이 낳은 큰 인물


주변에 미당 시문학관(부안군 선운리)과 서정주 생가 등이 있어 연계해 둘러보면 좋다. 미당이 나고 자란 고향(질마재) 마을 폐교 터에 건립된 미당 시문학관에는 미당의 시들과 그의 유품, 생전의 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시인은 그의 산문시 <질마재 신화>에서 이곳 선운리를 자세하게 써 놓았다. 미당 서정주 생가에서 2.7㎞ 떨어진 고창군 봉암리에는 대한민국 2대 부통령을 지냈으며 동아일보사와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 생가가 있다.


이밖에 무장면 성내리의 무장남문과 토성도 고창의 역사를 더듬어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문화재들이다.

 

 

 

풍천장어 구이

 

선고창은 풍천장어 맛이 각별하다. 선운사 입구에는 풍천장어 전문 식당이 많다.
명가풍천장어 063-561-5389
신덕식당 063-562-1533
연기식당 063-562-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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