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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 EL-Safe

언어학자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통해 본 ‘엘리베이터와 승강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내고 언어학자, 기호학자로서 한국의 살아있는 석학으로 불리는 이어령 교수가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을 펴냈다. 특히 1장 ‘왜 지금 가위바위보인가’에는 ‘엘리베이터와 승강기’라는 제목으로 아시아의 근대화를 연관 지으며 흥미롭게 해석하고 있어 이를 발췌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구성 편집부 / 자료제공 마로니에북스

 

 

 

 

근대에 고층빌딩과 함께 등장한 엘리베이터는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달리는 기차이다. 그 이름도 어딘가 ‘표 파는 곳’과 닮은 부분이 있다.

 

엘리베이터는 ‘올리다’라는 뜻의 영어 동사‘elevate’에 행위자를 나타내는 접미사 ‘-or’를 붙인 말이다. 그래서 옛날의 교회 라틴어에서는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을 끌어올려 구원해주는 구세주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키가 커보이도록 만든 키높이 구두를 ‘엘리베이터 슈즈 elevator shoes’라고 부른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위로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래로 내려오기도 한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을 하는 선형적 사고에서는 올라가고 내려오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동시에 포용하는 것이 서툴다.

 

그래서 ‘올라가는’ 쪽을 메인 컨셉으로 잡고 ‘내려가는’ 쪽은 무시해버린다. 그 결과 ‘엘리베이터(올라가는 것)를 타고 내려온다’는 터무니없는 표현이 나오게 된다.


영어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엘리베이터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아쌍쇠르ascenseur’와 독일어 ‘파슈툴Fahrstuhl’도 모두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만 갖고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나타나도 작명 방법에는 시대의 구분이 없다. 에스컬레이터는 감정이 ‘에스컬레이트된다흥분하다’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였다.


막부幕府 말기 일본의 견구사절遣歐使節이 마르세유에서 난생 처음 엘리베이터로 안내를 받았을 당시 그것을 방으로 착각해 ‘이렇게 작은 방에 가두다니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며 분개해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일본에 들어온 뒤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던 이름이 ‘승강기昇降機’라는 제대로 된 호칭으로 바뀐 것을 알게 되면 웃을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굳어 있는 쪽은 서양인과 지금의 아시아인들이다. 확실히 승강기라고 부르던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의 엘리베이터의 감각과는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승강기라는 그 이름대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쌍방의 움직임을 동시에 포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도 엘리베이터를 전기로 움직이는 사다리라는 의미로 ‘디엔티電梯’라고 썼으므로 역시 승강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작명법의 차이는 결코 우연이라고 할 수 없다. 승강기뿐만이 아니다. 뫼산 변山에 윗 상上과 아래 하下를 합쳐 ‘도우게峠: 고개’라는 일본의 독특한 글자를 만든 것도 모두 같은 관점이다.


그에 비해 산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인 ‘마운틴mountain’은 ‘오르다’, ‘올라가다’라는 뜻의 동사 ‘mount’에서 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영어의 마운틴에는 엘리베이터처럼 ‘오르다’라는 일방적인 의미밖에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엘리베이터라는 기호는 양쪽 면 중에서 주된 한쪽 면만을 잘라낸 것으로, 배타적인 직선형 사고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반해 승강기라는 이름은 양면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포괄적인 사고방식이다. 더 이상 엘리베이터를 승강기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다.

 

한국과 중국에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에는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표현이 있지만, 그릇器과 재주才가 바뀌면 도리道와 정신魂도 함께 바뀌기 마련이다.


아시아의 근대화를 한마디로 말하면 승강기에서 엘리베이터로 기호의 시스템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발췌

 

 

 

이어령의 가위바위보 문명론

 

 

 

 

 

이 책은 일본 신조사에서 2005년 4월 간행된 <ジャンケン文明論>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일본 출간 이후 10년 만에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일본 출간 당시 ‘가위바위보’라는 세 나라의 놀이 문화로 동양은 물론 서양의 역사와 문화, 정치까지 해석하는 기발한 내용이라는 평과 함께 아사히 신문 등 일본 유력 신문의 호평이 쏟아졌으며 곧바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이후에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 사가 현 내의 고등학교 입시문제로 출제되는 등 매년 대학을 비롯한 입시문제에도 지문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일본의 우경화, 중국의 팽창주의로 인해 더욱 더 치열해진 동아시아의 패권다툼 속에 있는 우리의 지금을 돌아보며 읽어볼 만하다.


마로니에북스 | 456쪽(한국어+일본어 합본)│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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